“정신 똑바로 차려 이 새끼야. 장난인 줄 알아?”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욕지거리다. 눈발 흩날리던 2월 55사단 신병교육대 사격장. 예년보다 더럽게 춥다던 그 해엔 대설까지 내렸었다. 모든 군인이 사격 전 행하는 준비운동이 있다. 악명 높은 PRI다. 엎드려 총구에 올려둔 바둑알이 떨어질까 싶어 미동도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날은 보수공사를 위해 PRI장 덮개가 없었다. 어쩐지 춥더라. 그날 난 눈사람이 눈으로만 만드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다이아몬드 3개 아저씨는 실탄을 받고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지시했다. 방아쇠를 당기라고. 이걸로 진짜 사람이 죽는단 건가.

타앙!

영화서 보던 총소리는 거짓말이었다. 오른 귀에서 들린 굉음에 깜짝 놀라 허둥지둥했다. “뭐 하는 거야. 미쳤냐.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새끼야. 장난인 줄 알아?” 십여 년이 지나니 교관이 던진 욕지거리는 욕이 아니라 약이었다. 정신 돌아오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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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다시 울려 퍼진 폭음에 멍 때 리던 아까완 다르게 이번엔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이야, 이 정도 높이면 몇 미털까. 물기둥이 얼추 30~40미터는 돼 보인다. 15층 아파트 높이 정도 되려나. 게이시르(Geysir)는 간헐천이란 말 그대로 간헐적으로 물기둥이 솟아나는 곳이다. 마그마에 데워진 지하수가 분출되는지라 80~90도로 매우 뜨겁다고 한다.

어쩐지 입구 우측 녹색 알림판이 무시무시하게 쓰여있더라.‘You are here at your own risk(네 의지로 여기 있는 거야. 책임 안 져.)’돌 던지지 마시오. 동전 던지지 마시오 하던 평이한 경고는 마지막 줄에서 강한 공포감을 형성한다.’The nearest hospital is 62km away(제일 가까운 병원은 62km 떨어져 있어)’ 섬찟하지 않은가. 알림판에 쓰인 경고문은 하나도 빠짐없이 지키고 싶어 진다. 물론 그럼에도 지키지 않던 사람이 있긴 했지만.

솟아오른 물기둥은 수증기 되어 흩날렸다. 힘을 다한 걸까. 바람 부는 대로 몸 맡기듯. 짧은 쇼가 끝났다. 사람들은 콘서트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쇼는 만족스러웠을까? 이 정도로? 나는 아직 만족스럽지 않았다. 딱 한 번만 더 보기로 했다. 빈자리는 다시 새로운 사람들로 다시 채워졌다. 나도 자리를 옮겼다. B석에서 R석으로. 무릎 높이 경계 줄 너머 무대로 난입하려던 열성 관중은 옆사람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정말이지 큰일이라도 날 뻔했다. 무대 정가 운데 허연 연기와 함께 조그마한 기포가 올라왔다. 부글부글. 게이시르(Geysir)가 새로운 쇼를 준비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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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제히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뒤편에 위치한 사람은 까치발을 들었다. 게이시르(Geysir)를 촬영하기 좋은 각도를 찾기에 분주했다. 게 중 여유로운 사람도 있었다. 까치발인들에게 순순히 자리를 내주던 사람들. 은색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연결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장 뒤 편에 섰다. 배려심 많은 사람들. 나는 이 글을 빌어 그들의 숭고한 준비성에 경의를 표한다.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부글거림이 절정에 달했음을. 곧 오리라. 아, 온다. 온다. 온다. 온다!

퍼엉! 찰칵찰칵찰칵찰칵.

쇼가 시작되자 셔터가 열고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쇼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분출해내는 마음소리였다. 순간을 위해 수분을 준비했다. 하지만 나는 금세 끝나버린 세 번째 쇼에 작은 허무감을 느꼈다.

‘이거 보려고 한 번 더 기다렸나.’

분출된 물기둥은 또다시 수증기가 되어 내렸다. 머리 위로. 그런데 아까완 뭔가 다르다.

바람이 멎었다. 소리도 멎었다. 독수리 울음소리. 하늘서 내린 수증기는 안개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 마법이 다시 펼쳐졌다. 세상이 황금빛으로 변하는 마법 말이다. 태양이 우릴 향해 고갤 돌린 걸까. 갑작스레 펼쳐진 앵콜 공연에 다시 카메라들이 분주해졌다. 찰칵찰칵. 물기둥을 향하던 카메라들은 사람을 향하기 시작했다. 나. 너. 우리. 이 아름다운 순간을 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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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도 갖춰졌다. 분위기도 갖춰졌다. 환호성도 터져 나왔다. 어찌나 신나던지 나와 셀피를 찍는 사람이 누군지 상관도 없었다. 순간에 취해 즐길 뿐이었다. 이건 축제였다. 빨간 옷을 입고 너나없이 껴안던 2002년과 같은.

아직 한창인 축제 현장을 뒤로했다. 아쉬울 때 떠나라 했다. 내 기억엔 골든 게이시르 만 기억나겠지. 입구까지 난 보도블록 따라 걷다 보니 생각났다. 입구를 들어설 때 보았던 사람들. 아쉬운 듯 발 밑만 보고 가던 그들. ‘미안합니다. 나는 더 좋은 걸 보고 가네요.’ 나와 아내는 그들과 달리 웃으며 나왔다. 게이시르에서 만난 작은 축제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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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Brunch 에 발행 중인 글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