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포스가 흘려보낸 욀피사우 강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구불거리던 30번 국도는 곧게 뻗은 1번 국도로 이어졌다. 드넓던 목초지는 바다로 바뀌었다. 아내는 차창 너머 뻗친 손 끝 사이로 검은 해변을 흘려보냈다.

뉘엿거리던 해는 바다 너머로 물러갔다. 차가운 대지를 감싸던 따스한 황금빛 온기도. 어스름이란 녀석이 다가와 빈자리를 채운다. 아래서부터 짙게 깔더니 어느새 온 하늘을 뒤덮었다. 조금만 더 서둘렀더라면. 아쉬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인정할 수 벆에 없었다. 황금빛 여행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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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iyong Kim
 

작은 개울 길 따라 폭포 앞에 섰다. 회색 빛 자갈길은 어스름 녘 우리를 맞이하는 그레이 카펫(Grey carpet)이었다. 사실 기대감이 컸다. 사진 한 장이었다. 셀라란즈포스 뒤편 동굴에서 찍은. 폭포 아래 작은 못이 고여있었다. 위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맑은지 청아한 에메랄드빛을 뗬다. 바위엔 녹빛 이끼 가득했다. 누가 보면 풀이라도 자라나 싶겠지만, 생명력 강한 이끼 덕에 생동감 넘쳐 보인다. 폭포 너머 녹음 우거진 평야엔 여행자 몇이 폭포를 향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 떠다니는 구름은 물 위를 노니는 나뭇잎처럼 여유로웠다.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내가 원했던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폭 좁은 폭포였다. 낙수량도 많지 않았다. 에메랄드빛 폭포수는 모두 얼었다. 푸른 이끼 대신 고드름이 열렸다. 사진과 너무 달랐다. 원수(原水) 셀라란즈 강(Seljalands River)이 얼어붙었을까? 아니면, 폭포 너머 산 쪽은 눈이라도 내리는 걸까? 아니면 사진이 거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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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에 허전함을 느끼던 찰나였다. 바람이 불었다. 덜컥 겁이나 고개를 푹 숙였다. 굴포스 거센 바람이 떠올라서다. 뒤집어쓴 모자 틈 사이로 춤추는 폭포 줄기를 보았다. 바람에 맞춰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오른쪽. 새 허연 게 눈 앞에서 살랑거리는 게 어디서 많이 본 거다. 아, 15년 전 우리 집서 지냈던 막내 모습이다.

이름은 새롬이고, 성은 김씨니 김새롬이다. 아버진 호적에 올리진 않았지만, 특별히 성을 하사하시었다. 순혈 페키니즈라 족보도 있던 거 같은데, 어디 갔는지 못 찾겠다. 아침 6시면 내 방 문을 긁어댔다. 어머니께서 문이라도 열면 들이닥쳐 내 얼굴을 핥아댔다. 간밤에 그리도 보고 싶던 겐가. 원랜 같이 끌어안고 잤었다. 분양주는 어미 품을 떠나 독립성을 길러야 한다며 내버려 두랬지만, 밤마다 낑낑 거리는 녀석을 홀로 두고 잘 수 없었다. 울부짖음이 잦아질 때쯤 홀로 내버려 두었다. 새롬이도 같이 넣어둔 작은 인형 끌어안고 잘 잤다.

몇 개월 뒤, 이런저런 이유로 할머니 댁에 새롬이를 두기로 했다. 글로 표현이 안되니 이런저런 이유다. 할머니는 시골 동네 똥개 밖에 안 키워보신지라 보일러 실에 목줄 메어 두셨다. 딴에는 추울까 봐서 배려하셨을지도 모른다. 바뀐 환경에 예민해지기라도 했는지, 새롬이는 밤마다 짖었나 보다. 왈왈. 왈왈. 앙칼진 울음소리가 내게는 귀여웠는데, 몸 불편하신 할머니께는 스트레스로 작용했나 보다. 손주 녀석 좋아해 맡긴 했는데, 예민하셨던 심정을 새롬이에게 표현하진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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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iyong Kim
 

두 달 뒤 새롬이를 찾아갔다. 몰라볼 뻔했다. 털이 다 빠진 채 멍한 표정이었다. 우릴 알아본 후 새롬이 눈엔 눈물이 글썽였다. 강아지 눈물 글썽이는 모습은 처음 봤다. 반가웠는지 꼬리만 애타게 흔든다. 왼쪽. 오른쪽. 살랑살랑.

대(大) 자연 속에 있고 싶던 아내는 폭포 앞에 서 있음에도 행복해했다. 아내가 행복해하니, 나도 행복한 거라고 되뇌었다. 사진이나 찍어볼까 싶어 뒤편 동굴 가는 길을 찾았다. 꽁꽁 얼어붙어 갈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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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뒤로 했다. 차 시동이 안 걸린다. 추위에 배터리 문제라도 생긴 건지 서너 번만에 시동이 걸렸다. 차 앞 유리가 뿌옜다. 손가락이라도 댄 듯, 꼬리 살랑이던 새롬이가 그려졌다. 새롬이는 언제 떠났더라. 기억도 안 난다. 살랑이는 꼬리 밖엔. 신혼여행이니깐. 입꼬릴 들어 웃었다. 속은 울면서. 그래서 웃프다고 하나보다.

위 글은 @Brunch 에 발행 중인 글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