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Glacier

 

‘아이슬란드에선 어떤 액티비티를 해야 하나?’ 별거 아닌 고민에 머리만 쥐어짰다. 맘에 드는 액티비티는 많았지만, 우리 여행기간에만 걸린 ‘예약 완료’ 팻말이 거슬렸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 예약한 거야?’ 모니터를 향해 나지막한 투덜거리며 마법을 기대했지만, ‘예약 완료’가 ‘예약 가능’으로 바뀌진 않았다. 액티비틴 못할 운명이라며 노트북을 덮었지만, ‘그럼 뭐하지?’라는 질문에 다시 노트북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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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 만 행성

 

“인터스텔라, 만 행성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내 블로그 하단에 떠오른 광고 한 문장이 시선을 집중시켰다. 설마. 링크가 연결된 곳은 로컬 여행사 Glacier guide 웹페이지였다. 추천 상품 ‘Into the Glacier’는 인터스텔라 영화 촬영지인 바트나요쿨 국립공원(Vatnajökull National Park)에서 이뤄지는 빙하 트레킹 상품이었다.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라..’ 책상 의자를 한 바퀴 돌리며 내 기억도 2년 전으로 되돌려 봤다. 식량 부족으로 지구를 떠난 만(Mann) 선장이 찾은 세 번째 행성. 구름이 얼었다는 드넓은 빙하 위를 걷던 주인공 일행을 기억해냈다. 특별한 경험이라는 생각에 예약 가능 여부만 확인하고, 곧바로 예약해버렸다. 그리고 여행 출발일까지 남은 세 달 동안은 상상 속 빙하 위를 걷다가 잠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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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Glacier. 광고와 현실은 차이가 있다.

Glacier Walking

 

바트나요쿨(Vatnajökull)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아침 8시 반이었다. 순탄하리라는 생각과 달리 2시간 내내 긴장 속에서 운전했다. 해가 뜨지 않은 도로 위엔 어스름만 짙게 깔려 있었다. 간밤 내린 눈에 도로는 얼어 있었고, 가로등마저 없는 구간을 지날 때면 ‘이렇게 운전해도 되나?’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미친 짓’이었다. 새벽 1시, 눈 내리는 세곡동 사거리에서 차가 미끄러져 한 바퀴 돌았다. 차가 멈춰 서고 나니 살았다는 생각보다도 아이슬란드 빙판길을 무사히 다녀온 건 천운이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가슴을 툭툭 치며 씁쓸한 웃음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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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준비중인 가이더들. @Glacier Guides

 

바트나요쿨(Vatnajökull) 주차장 옆 Glacier Guide 사무실 앞은 트레킹 안전 용품을 버스로 옮기는 가이더들로 분주했다. 네모난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피켓, 아이젠, 안전모를 흘깃 보며 4,000m 히말라야 베이스캠프를 방문한 전문 산악인 인양 어깨를 들썩였다. 에헴, 그럼 어디 들어가 보실까. 기새 등등히 들어간 오두막은 북새통이었다. 여섯 명이 서도 꽉 찰 좁은 공간에 열명이 주저앉아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접수대까진 다섯 걸음이었지만,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Excuse me’를 열 번은 더 외쳐야만 했다.

“Jiyong, Kim? OK”

우리가 마지막이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번에 내 이름을 외칠리가 없다. 나도 주저앉아야 했다. 대여한 등산화는 두껍고 무거워 서서 가볍게 신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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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jökull

 

부르릉. 버스 시동 소리에 놀라 끈 매듭도 잊은 채 버스에 올랐다. 그대로 스카프타펠을 오를 줄 알았더니, 주차장을 나가 남쪽으로 10분, 동쪽으로 5분을 이동했다. 버스가 멈춰 선 곳은 크반나달스흐누퀴르(Hvannadalshnúkur) 산 근처 폴요쿨(Falljökull)이었다. 난 3개월간 잠들기 전 걷던 빙하를 상상하며 버스 뒷자리에서 출구까지 걸었다.

“여기 지구 맞아?”

버스에서 내리며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물었다. 영화 속 촬영지는 아니었지만, 은빛 빙하는 외계 행성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서울 촌사람 티는 나지 않았다. ‘우와’를 외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으니깐.

 

‘당신들이 한 그룹입니다.’ 가이더는 버스에서 내린 사람 순으로 그룹 지어버렸다. 우리 그룹은 유러피안 커플, 하와이안 커플, 아내와 나까지 총 6명이었다. 우리 가이더는 170 cm 큰 키의 아이슬란드 여성으로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자그마한 손짓으로 우리를 한 곳에 모으더니 피켓, 헬멧, 거대 아이젠을 지급했다. 이걸 어떻게 쓰나 어리둥절했지만, 헬맷에 모두 넣고 들고 가기로 했다. 이제 정말 빙하 트레킹을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멀리 빙하가 보인다. 우린 가이더 외침 따라 한 줄로 걸었다. “Follow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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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활한 가이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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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아이젠, 이정돈 되야 빙하 트레킹하지!

 

빙하 위를 걷는 일은 쉽지 않았다. 머리론 알고 있다. 허벅지에 힘을 주어 발을 들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시 내려놓으면 된다는 것을. 걸음걸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 않았다. 다만, 엄지 손가락만 한 아이젠 날이 꽤 성가시게 굴었는데 다리를 종아리 2/3 지점까지 들지 않으면, 날 끝이 빙하에 끌려버렸다. 칠판을 포크로 긁는 느낌만 못하지만,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또 바닥을 너무 세게 내리찍기라도 하면 날이 빙하에 박혀 버렸다. 걸음마를 배울 때도 이렇게 집중했을까. 다시 두 살로 되돌아온 기분이다.

 

힘 조절은 점차 익숙해져 갔다. 가이더는 ‘가이드 없이 빙하 트레킹을 해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빙하에 형성된 크레바스는 앞에 보이는 작은 구멍을 의미합니다. 언뜻 보면 작은 구멍 같지만, 깊이가 3m 이상인 곳도 있습니다.” 가이더가 자신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니, 가이더도 낯간지럽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입식 교육이었지만, 신선했다. 난 저 작은 구멍을 가볼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깐. “이 피켈은 어디에 쓰는 건가요? 너무 짧아서 지팡이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농담조로 던진 질문이었지만, 가이더는 진지하게 답했다. “만약 떨어지게 되면 날카로운 부분으로 벽을 내리찍으세요, 영화처럼요.” “지금은 어떻게 할까요?” 가이더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Useless(쓸모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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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바스

 

‘이 빙벽은 어떻게 생겨난 거지?’ 6m 빙벽 아래서 나는 누군가 질문에 답해주길 바랬다. 헐떡이는 숨을 참고 가이더에게 달려가 물었지만, 글쎄요.라는 물음으로 난색을 표했다. 내 질문이 그렇게 어려운가?

 

그나마 이 질문에 답해줬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가장 뒷자리서 졸던 나에게 분필을 던졌던 김 아무개 선생님이다. 수업을 통해 난 세 가지를 배웠다. 수업시간에 졸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고, 두 번째 던진 분필을 보며 날아가는 총알은 회전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마지막으로,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 이유를 배웠다.

 

지금도 지구 빙하설을 들으면 공룡과 눈보라 치는 산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빙벽을 직접 보자 솟아오르는 의구심은 참을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을까? 행성이 충돌해, 모든 게 얼었다는 이야기가? 그렇다면 내 눈 앞 빙하는 왜 일렁이는 파도가 얼은 듯 ‘결’이 느껴진단 말인가. 이 산까지 물이 차올랐던 게 일순간에 얼었다면 납득이 된다. 혹 대홍수와 빙하는 같은 시기에 일어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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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괴고 생각하느라 일행을 놓쳤다. 아내와 나를 제외한 일행은 빙하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물음표를 빙벽에 걸어둔 채 빙하 언덕을 내려와야 했다. 아마 다음에 다시 오더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도대체 이 빙벽은 어디서 왔나요?’

 

얼음동굴에서 얼간이들과

 

하얀 안전모를 쓰고 뒤뚱거리는 우리는 영락없는 하얀 병아리였다. 언덕 내리막은 얼음 동굴 입구로 이어졌다. 엄마 닭은 입구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좁은 얼음 계단 사이로 사라졌다.

 

남겨진 병아리들은 신나서 낄낄거렸다. 산타 양말을 벽에 걸고 잠자기 전 키득거리는 어린아이 모습처럼. 아침에 발견할 볼록한 양말 속 선물은 어떤 모습일까? 누가 깨우지 않아도 그 날은 가장 일찍 일어나겠지. 우리가 얼음 동굴에 갖는 기대는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적진 않았다. 얼음 계단 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엄마 닭이 들어오라며 손짓하기 시작했다. 병아리들은 뒤뚱이며 작은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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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동굴에서.

 

웃차.

얼음 계단 한 칸은 옆에 메어둔 등산 로프를 붙잡고 살포시 뛰어내려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한 가이더는 둘러보라고 말한 뒤 근처 바위에 털썩 앉았다. 굴 안은 가로등 꺼진 골목처럼 어두웠지만 빙하 너머로 새들어온 푸른빛이 신비로움을 더했다. 성인 남성이 간신히 설만한 높이였을까. 그리 큰 공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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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기 그지없었다. 빙하와 땅 사이에 공간이 만들어지다니. 빙하 틈새라는 표현이 어울려 보였다. 동굴은 왠지 머리에 헤드랜턴이라도 장착해 탐험을 시작해야 할 장소 같았기 때문이다. 여긴 그보다는 작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전혀 춥지 않았다. 에스키모가 사는 이글루가 따스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믿진 않았었다. 눈으로 만든 벽돌이 얼마나 차가운데, 그 안이 추운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추위에 무뎌진 건 아닌가 싶어 빙벽에 볼을 갖다 댔다. 두어 번 비비자 냉기에 볼이 시려 깜짝 놀랐다.

 

“Say, Cheese!”

한 커플이 셀피를 찍자며 굴에 흩어져있던 가이더와 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커플은 일렬로 서서 가장 웃긴 표정을 지으며 함께 이 순간을 기념하자고 제안했다. 세상에서 가장 웃긴 표정. 난 혀로 코를 덮는 표정을 택했다. 글로 표현하긴 쉽지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찰칵! 일렬로 서 있던 대원들은 손을 뻗어 셀피 촬영을 한 커플이 뒤돌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린 당했다.’ 그 둘만 빼고 모두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은 셈이다. 말로만 듣던 ‘밀어주기’에 당했다. 사진 촬영 전 그들이 적어간 내 메일 주소엔 사진 한 장 도착하지 않았다. 아마도 SNS 어딘가를 떠돌고 있겠지. ‘얼간이들과 함께’라고 적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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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jök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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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며.

 

폴요쿨은 아이젠 날이 빙하를 찍어대는 퍽퍽 소리로 북적였다. 하나, 둘, 셋, 넷.. 어느새 여섯 팀이 빙하 트레킹 중이었다. 가이더 따라 총총거리며 빙하 언덕을 오르는 모습에 세 시간 전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저렇게 어설펐나?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오는 게 어렵다더니, 빙하도 마찬가지였다. 똑바로 걸어내려 오기엔 위험했고, 게처럼 옆으로 기어 내려와야 했다. 영차영차. 하체가 부실한 남자이고 싶진 않았지만, 서너 시간을 긴장하며 걸었더니 다리가 풀려 무릎 위아래가 휘청였다. 지리산 천왕봉 야간 등반도 매년 해내는 나지만, 빙하 트레킹은 무거운 아이젠 덕에 오래 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결론만 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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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은 귀엽게

 

Glacier Guide 오두막에 안전 장비와 등산화를 반납했다. 그룹원들과는 인사도 없이 헤어졌지만, 가이더에게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다신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음 날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던 중 마을 헬라(Hella)에서 만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3시간 떨어지 곳에서 다시 만난 건 참 대단한 인연인데, 먼저 아는 척을 한 가이더를 우리가 기억해내지 못해 미안했다.

 

차에 돌아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간밤 호텔 온수 터빈이 고장 나 미안하다며 직원이 싸줬지만, 차라리 조식을 먹겠다고 할 걸 그랬다. 맛있었지만 양이 적었다. 아참, 그랬다면 이렇게 빙하 위를 걸을 특별한 경험을 놓치게 됐을 테지. 허기지다 보니 별 생각을 다한다. 비교할 걸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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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쓰다보니 또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