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창밖 너머 수호목 한 그루.

몇 시쯤 잠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화장실 바닥 물을 유리컵으로 퍼 날랐고, 피곤해 쓰러졌다는 것만 기억해냈다. 어두운 방, 창문 버티컬 틈새로 가녀린 빛이 들어왔다. 혹시 오로라가 보이진 않을까 싶어 버티컬을 걷어보지만, 어두운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들 뿐이었다. 조막만 한 가로등 빛이 비친 골목들 사이로 연두색, 주황색, 빨간색 집들이 보였다. 레이캬비크는 참 아름다운 도시이다. 환한 대낮보다는 오히려 밤에 그 아름다움이 더욱 빛났다. 지난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정들이 사는 동화나라’였다.

나무로 지어진 집들 사이로 거대한 첨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작은 불빛에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석재로 이루어져 다른 건물보다도 단단해 보였고, 무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레이캬비크 중앙에 위치한 교회 할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였다.

한국 시골마을의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리게 했다. 선산이 위치한 노적 골 입구에 심긴 나무다. 여름이 되면 마을 주민들은 나무 아래에 하나둘 모여든다. 나무는 모여든 동네 주민들을 모두 덮고도 남을만큼 컸다. 나무는 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처마가 되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 나무를 수호목이라고 불렀다. 나무 한 그루가 마을주민들에게 정신적 버팀목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할그림스키르캬는 레이캬비크의 수호목처럼 보였다. 언제나 저 자리에서 굳건히 레이캬비크를 지킬 것만 같았다. 지쳐 휘청일 땐 언제나 돌아오라는 듯 두 팔을 벌리며 말이다.

두 번째 별, 할그림스키르캬. 눈 앞에 펼쳐지다.

오전 8시, 밝아질 줄 알았던 하늘은 아직 어둡다. 과연 겨울 북유럽답게 일출이 늦다. 창 밖 너머로 보던 할그림스키르캬를 직접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나무 계단은 밟힐 때마다 삐그덕 소리를 냈다. 계단이 내는 작은 신음 소리에 아래층 투숙객들은 ‘또 쟤네들이야?’라고 생각했을게다. 어쩔 수 없었다. 24L 캐리어 2개를 동시에 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단을 내려가서도 바퀴 구르는 소리도 소음이 될까 싶어 캐리어를 들었다. 숙소 현관문 앞에 서고 나서야 가슴까지 차올랐던 숨을 한껏 내쉴 수 있었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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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그림스키르캬로 가는 10분이 그리 짧게 느껴지진 않았다. 거리는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이른 아침인 탓에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음이 안타까웠다.

도로를 따라 주욱 선 가로등엔 눈 결정 모양 장식이 매달렸다. 새빨간 집의 지붕은 크리스마스 램프 장식으로 연결되었고, 장식 중앙부엔 작은 종이 매달렸다. 밤새 눈이 내렸더라면 영락없는 산타 마을일지도 모른다. 운전하는 내내 아내는 콧노래를 불렀다. 음으로만 이루어진 노래는 가사가 없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가사가 떠올랐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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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그림스키르캬 뒤편에 위치한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바닥은 얼음 투성이었지만, 미리 준비해 간 등산화 덕에 미끄러지지 않고 교회 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꼭대기를 바라보려 고개를 젖혔다. 과연,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높다는 건축물이다. 74.5m 높이는 뒤통수가 뒷목에 닿고 나서야 탑 꼭대기가 보일 높이였다.

교회는 용암이 분출돼 흘러내리는 화산과도 같았고, 여러 개의 손이 모여 손바닥을 마주친 합장과도 같이 보였다. 흔히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 떠오르는 손 모양이다. 때문인지 교회는 크고, 웅장하고, 장엄하게 느껴졌다. 단단하고 굳건히 서있는 듯 보였다. 게다가 장식 없이 매끈한 외벽 덕에 모던한 느낌까지 더해졌다. 고딕 양식의 중세 유럽 교회들이 외벽에 자잘한 문양을 새겨 시선을 흩어버린 것과는 사뭇 달랐다. 건물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었달까. 한참을 본 끝에야 알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를 표현하고 있구나라고.

할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라는 이름은 17세기 유명 종교시인이자 목사였던 할그리머 페티르슨(Hallgrímur Pétursson)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루터교 찬가에 대한 그의 공헌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출처: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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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앞 작은 광장엔 늠름한 모험가가 서있었다. 레이프 에릭슨(Leif Erikson)은 아이슬란드 출신으로 북미를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이다. 그는 뱃머리를 연상시키는 회색 대리석 위에서 멀리 바다 건너를 보는 듯했다. 이 동상은 싱벨리어에서 열린 아이슬란드 국회의 1,000주년을 기념하며 미국에서 보내온 선물이다. 할그림스키르캬를 등에이고 가는 모습은 마치 아이슬란드를 이끌고 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앞으로 아이슬란드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 부디 다시 방문하게 될 10년 뒤에도 이 모습 그대로이길 기원했다.

교회 탑 꼭대기엔 전망대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레이캬비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한 탓에 나는 갈 수 없었다. 교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싶지만 골든 서클 투어까지 다녀오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짧은 일조시간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또 막상 기다리자니 어두워서 뭐가 보일 까나 싶기도 했다. 4일 뒤 레이캬비크 시로 돌아온다. 그땐 밝은 대낮에 다시 만나기를.

안녕 할그림스키르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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