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조용한 거리를 걷고 있던 터라 더욱 도드라지게 들렸다.

‘설마, 너야?’, ‘나 아니야’.

주고받는 눈빛 사이에서 재빠르게 정죄와 항변이 오고 갔다. 범인을 찾기 위한 가벼운 탐색전이랄까. 하지만 내가 경험한 싸움은 목소리 큰 사람과 선빵 치는 사람이 유리했다. 아내가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더니 내 배꼽을 가리킨다. 그리고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 하하하하하.

아니 잠깐, 내 배에서 난 소리가 아니다. 아니야, 아니라고. 아내님. 진정해.

이미 웃음바다 위에서 배영(backstroke) 중인 아내는 귀를 수면 밑으로 묻어버린 듯했다. 내가 뭐라고 하든 듣지 못했다. 아마 들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웃어버리면 내가 범인이 되어버리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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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중앙역 인근 All Stars Cafe로 들어갔다. 일요일 아침 맥도널드 외에 유일하게 영업 중인 식당이었다. 입구를 들어서며 카페를 스윽 둘러보았다. 가게는 너비가 좁았지만, 속으로 깊은 직사각형 구조였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유독 술병이 많았는데, 심지어 카운터 뒤편에 도미노 마냥 주르륵 세워두기까지 했다. Cafe라는 이름에 가벼운 브런치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Pub 에 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을 가득 채운 테이블은 이미 거의 만석이다. 걱정과 달리 식당 내 사람들은 브런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모두들 네덜란드 인일까? 아니면 세계 각지 여행객들? 그들이 만들어낸 사람 냄새가 식당 안을 가득 메웠다. 유쾌하며 행복한 분위기. 한국선 벌겋게 취기 달아올라야 만들어질 법한 즐거운 왁자지껄한 판이 이른 아침부터 한창이다. 이 곳에서 식사를 하며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에 한껏 취해보고 싶었다. 해가 지면 시작해서 가로등이 깜빡일 무렵 끝나는 푸념과 속 쓰림의 어두운 회식 말고 말이다.

우린 입구 근처에 위치한 마지막 빈자리에 앉기로 했다. 혹여나 누군가 뒤 따라올까 싶어,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엉덩이보다 먼저 자리에 앉혔다. ‘아, 이건?’ 갑자기 한국 지하철에서 보던 익숙한 장면이 떠오르자 머쓱해졌다. 그분들도 마음이 급하셔서 그러셨겠거니. 공감과 이해. 직접 상황에 처해보니 지하철 그분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오, 가방이 정말 무거워 보입니다. 사진작가신가요?”

“아뇨, 그저 취미일 뿐입니다.”

“그거 참, 거대한 취미군요. 흥미롭습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40대 중반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묵직한 중저음 톤. 느릿하지만 부드러운 말솜씨는 신뢰감과 정중함을 느끼게 했다. 주인이 말한 ‘거대한 취미’는 거창해 보인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걸까. 뭐,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한국에 돌아가거든 이 큰 카메라 가방은 던져버리고 새걸 사야겠다고 맘먹었으니 말이다. 카메라 1개, 렌즈 5개. 절대 가벼운 무게는 아니다. 어쨌거나 주인은 네덜란드 메뉴를 건넸다. ‘영어 메뉴는 없나요?’라고 물었지만 주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난색을 표했다. 원랜 있지만 무언가 문제가 생겼나 보다. 우리는 Breakfast 메뉴를 추천받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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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주인이 내어온 요리들은 한국서 흔히 보던 Breakfast 였다. 오믈렛 고 토스트, 그리고 소시지와 baked bean. 그런데 맛은 그다지 흔하지 않았다.

한 입 베어 문 소시지에서 풍부한 육즙이 입안에 흘러들어왔다. 부드럽고 고소함. 탱탱한 속살이 식감을 더했다. 즐거운 맛에 입가에 미소가 자연스레 지어졌다. 함께 나온 Baked bean은 통조림으로 추정되었지만, 이마저도 맛있었다. 신선한 토마토와 오이는 입안에서 아삭아삭 소리를 낸다. 담백하고 맛있다.

작은 커피잔 손잡이를 들어 입술에 갖다 대었다. 잔을 통해 전해지는 적절한 온기와 다르게 커피는 매우 뜨거웠다. 깊고 진한 맛. 길거리 카페에서 마시던 에스프레소에 물탄 아메리카노가 아니었다. 입안에 맴도는 고소한 향에 저절로 눈을 감고 마시게 되었다. 잔에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시며 오늘 조식 선택은 탁월했다고 자평했다. 아, 생각해보니 착륙 전에 먹었던 기내식 이후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배고픈 상태여서 실제보다 맛있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하.

행복한 식사는 금세 끝났다. 뒤에 줄 선 사람들을 위해 서둘러 계산하고 가게를 나섰다. 휑하던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조용하던 골목은 시끌벅적해졌다. 재잘재잘대는 커플들의 속삭임. 찰칵찰칵 스마트폰 카메라 소리. 여행객들이 손에 쥔 커다란 캐리어들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 오전 10시, 암스테르담의 하루는 이제야 시작된 것 같다. 포슈슈 소리를 내며 멀리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온다. 이제 떠나는 이. 막 도착한 이. 둘의 걸음이 교차되는 곳이다. 도착하며 가슴속 품었던 기대를 머릿속 행복한 기억으로 바꾸며 돌아간다. 아름다운 곳이다.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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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난 꼬마신랑은 스키폴 공항에서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10세 정신연령 수준의 행동을 보였다. 진짜 아이슬란드를 본 다는 생각에 끓어오른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내 얼굴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손주를 보시던 표정이 떠올랐다. 늘 ‘애고애고 내 새끼’ 라며 엉덩이를 토닥이시며 흐뭇해하시던 표정이다. 큰 애를 키우게 될 것 같다던 아내의 말이 이 뜻이었나 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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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캬비크(Reykjavik)행 C9 게이트에 도착했다. 여유롭게 도착하려 했지만 고작 출발시간 45분 전이다.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게이트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전면 유리창 앞 비어있는 두 자리를 찾아 좌석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마주 본 좌석의 간격이 좁은 편이라 Excuse me를 연발해야만 했다.

금속 갈리는 소리와 함께 코카콜라 캔 입구가 열렸다. 공기와 만난 탄산은 이글대기 시작한다. 아내와 달달한 검은 음료를 한 모금씩 하며 주위를 둘러보기 보았다.  조직 내 학연, 지연이 생기는 이유일까. 자연스레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함이다. 그러나 한국인, 아니 누런 피부의 동양인은 한 명도 없었다. 팔다리 긴 노란 거인들 사이에서 검은색 난쟁이 둘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비하 발언이 아니다. 그저 내가 느낀 감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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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 instappen.

보딩 상태를 알리는 전광판은 탑승이 시작됨을 알렸다. 영어가 아닌 네덜란드어로 표기되어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게이트로 몰려드는 승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줄을 서자 전면 유리창 너머로 새하얀 비행기가 보였다. 우리가 타고 갈 아이슬란드 에어(Icelandair) 항공기다. 순백색의 흰색 몸체와 남색 윙팁을 보자, 바다 위를 떠다니는 얼음이 떠올랐다. 정갈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바다 위 아이슬란드가 날개를 달고 우리 부부를 데리러 온 건 아닐까.

부푼 기대보다는 항공기가 작았다. 제트 브리지(Jet Bridge)에서 본 항공기는 아이슬란드는커녕, 북해 너머 영국을 가기도 벅차 보였다. 이따금씩 부는 바람에 전면 창이 조금씩 떨린다. 이 정도 바람이면 항공기가 휘청이진 않을까. 작은 걱정과 불안감을 앉고 기내에 들어섰다.

항공기 내부는 단조로운 외관과 다르게 고급스러웠다. 시트들은 넓고 푹신해 보이는 검은 가죽 시트였고, 허리와 가슴을 구속하는 4 점식 안전벨트도 장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꼬리에 위치한 자리를 찾아가며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 좌석은 여타 항공기에서 보던 이코노미석과 동일했다. 앞에서 본 좌석은 보다 상위인 사가 클래스석이었다.

하체만 동여 메는 1 점식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멈추었던 비바람이 다시 시작되었다. 항공기가 바람에 좌우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우리와 달리 다른 승객들은 차분해 보였다. 무사히 아이슬란드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날개쪽에서 엔진 가속음이 들리더니 활주로를 따라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랜딩기어가 접히고 비행기는 구름 위로 향한다. 도중에 두세 번 휘청였지만 다행히도 추락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먹구름 사이로 흐릿하게나마 암스테르담이 보인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짧았지만 즐거웠던 암스테르담에서의 시간을 되새겼다. 중앙역에서 비바람에 아내를 부둥켜안고 덜덜 떤 이야기. 스타벅스에 들어가 아내와 나눈 이야기들. 비 그친 새벽 암스테르담의 멋진 모습. 암스테르담 운하를 거닐며 아내와의 촬영. I amsterdam과 all stars cafe 에 갔던 일.

구름 사이로 힐끗 보이던 암스테르담이 점점 멀어져 간다. 행복했던 기억을 잊지 않기로 결심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안녕 암스테르담, 그리고 안녕 아이슬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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