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닷바람이 내민 손을 잡았을 뿐인데, 이끄는 대로, 이끌리는 대로 걷다 보니 마을을 한 바퀴 돌아버렸다. 예정에도 없던 산책에 허기질 만도 하련만, 꽃향기 맡은 붕붕이 마냥 신나서 돌아다녔다.

 

아이슬란드 최남단 마을, Vik I Myrdal(비크 이 미르달)에서다.
레이니스피아라가 위치한 작은 산 너머 1번 국도 링로드가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다. 바다가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갔다고 해서 우리말로 ‘만(Bay)’이라 불리는 이 지형은 노르웨이어로 ‘Vik’라 불린다. Vik에 사는 사람을 Viking(바이킹)이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바이킹 말이다.

 

300여 명 남짓한 바이킹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여행객들에겐 주요 거점이다. 히말라야 등정을 위한 1차 베이스캠프 같달까. 레이캬비크에서 출발하여, 링로드를 반시계 방향으로 향하면, 골든 서클 투어를 끝내고 묵기 딱 좋은 위치다. 요쿨살론을 가기 위해 하루 전 날 묵기에도 좋은 위치고. 비크가 주는 정겨운 풍경이 취하고픈 사람들이 묵기에도 좋은 곳이다.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Vik Chruch, Vik I myrdal

 

특별한 무언가로 인한 정겨운 마을은 아니다. 배산임수 지형으로, 평온한 마을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주는 고즈넉함에 여행자들이 이끌릴 뿐이다. 굳이 특별한 한 가지 꼽자면 언덕 능선에 자리한 지붕 빨간 교회다.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리고 마을 어느 곳이든 볼 수 있는 위치에 우둑하니 서있다. 10평 크기로 작고 소박하지만 어릴 적 동화책에서나 볼법한 모습에 오히려 정겹다.

비크가 내는 ‘향’은 그간 다녀본 여행지와는 달랐다. 아기자기한 파스텔톤 집들이 자아내는 따스함은 추위도 잊게 했다. 어찌 보면 한국에 한때 유행했던 북유럽 감성은 추운 기후에서 따스함을 찾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 일지 모르겠다. 남유럽과 같은 화려한 장식 보단, 투박한 따스함이랄까.

아무리 북유럽 감성이래도 반팔에 반바지는 아니었다. 내 상식에서 벗어난 그는, 길이 50cm 허연 불꽃을 뿜어내며 우릴 지나친 한 청년이다. 갖가지 직물로 꽁꽁 둘러맨 우릴 쓱 한 번 쳐다보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현지인이었다. 그들에겐 그다지 추운 날씨가 아닌가 보다. 우린 이렇게 추운데, 영하 9도에 반팔, 반바지는 좀 아니지 않은가.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Vik I myrdal

 

나는 비크가 내는 ‘향’에 보다 집중하고 싶었다. 가볍게 시작한 산책이 두 시간이 걸린 이유다. 이 ‘향’을 느끼려 여행국가마다 시골을 가보려 노력해왔다. 화려한 도시도 좋지만 아직은 소소한 시골이 내는 ‘향’이 더 좋다. 도시선 경험하기 어려운 여행의 또 다른 맛이랄까. 굳이 표현하자면 도시는 Melting pot이라 느껴서다. 갖은 채소를 썰어 넓적한 그릇에 밥과 넣고 뻘건 고추장으로 한데 섞어버린 비빔밥이다. 알록달록 채소들을 벌건 고추장으로 비벼버리니, 고소함도, 향긋함도, 모두 매운맛에 가려졌다. 다르게 비유해볼까, 편차를 없앤 공산품과도 같다. 표준화시키기 위해 정한 규격에 독특한 ‘향’을 내는 요소들을 잃었다. 물론, 도시만의 내음도 있지만, 보다 깊고 진한 ‘향’을 위해 시골을 찾는다. 군댓말로 싸젯물이 덜 든 곳 말이다.

 

세 걸음마다 주머니를 뒤적였다. 스마트폰으로 오로라 예보를 보기 위해서다. 아내는 어제 오로라를 봤으니, 오늘은 가볍게 생각하라고 했다. 말은 쉽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손주를 무릎에 앉히곤 벼락부자가 망하는 이유를 자주 말씀하셨다. 쉽게 얻었기에 쉽게 쓰게 되서라고 하셨다. 중학교 시절, 로또 1등에 강남으로 전학 갔던 친구가 1년 만에 돌아온 이유도 그와 비슷했다. 그리고, 첫 방망이에 홈런을 친 내 맘도 그랬다. 오늘도 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오로라 레벨 3이었다. 기상청은 레벨 3을 강렬하진 않지만, 적절하다는 의견인 ‘Moderate’로 정의했다. 하지만, 대기 상·중·단 모두 구름이 없어 선명할 ‘수도’ 있다 라는 첨언도 하였다.

‘아싸’

가볍게 주먹으로 공중을 탕 쳤다. 오늘 밤 오로라 보는 거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호텔 앞 작은 펍에서 패스트푸드를 주문했다. 피자나 양고기 등 메인 코스 요리들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예산 대비 지출 현황을 잠시 계산하곤 포기했다. 1 접시에 4만 원 하는 요리를 매일 먹긴 부담스러웠다.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Strondin Bistro and Bar, Vik I Myrdal

 

패스트푸드는 상대적으로 저렴했지만, 맛을 무시할 순 없었다. 아내는 햄버거, 나는 생선가스(?)였다. ‘냉동식품 가져와서 해동했겠지’ 하는 생각은 생선가스를 한 입 베어 문 뒤 사라졌다. 태어나서 이렇게 속살이 탱글한 생선가스는 처음이다. 통통 튀는 식감은 어제 먹은 대구 스테이크 못지않았다. 햄버거 패티는 또 어찌나 구운향이 강하고 맛있던지 저렴하지만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어젯밤 오로라 촬영을 하다 보니 깨달은 바가 있었다. 우리에겐 장갑이 필요했다. 특히나 아내에겐. 제대로 된 방한장비 없이 도전한 우리가 어리석었다. 건너편 의류점 아이스웨어(Icewear)에 장갑 및 기념품 구경 겸 들렀다.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장갑, 목도리, 양말, 기념품 등 다 판다.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아내가 산 장갑. 한국와서도 요긴하다.

 

온갖 아이슬란드 굿즈(Goods)가 다 있었다. 양말, 장갑 등 말이다. 아내는 선물 대부분을 여기서 구매했으며, 품질에 만족해했다. 털로 된 제품은 굉장히 비쌌는데, 맘에 들었던 털 점퍼는 40만 원이 넘었다. 가격표만 확인한 후 집어 든 제품은 그대로 내려뒀다. 손바닥으로 구김까지 제거해주고 말이다.

 

띠리리리리리

또 기분 나쁜 소음에 깨버렸다. 눈을 떠보니,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벽에 기댄 채였다. ‘일어나.. 일어나… 얼른’. 머릿속 외침은 팔다리까지 도달되기도 전에 사그라들었다. 어찌나 피곤했던지. ‘그깟 오로라가 뭐라고 내가 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열댓 번은 했다. 내일 아침 분명 후회할 거면서 말이다. 결국 나는 불순한 동기로 몸을 일으켰다. ‘계속되는 알람 소음에 신고라도 들어오면 어쩌는가’ 하는 생각에서다.

띠리리리릭(?)

휴대폰을 찾아 알람을 껐다. 피식. 알람 문구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Look at the sky. It’s Coming”.

레벨 3. 오로라가 왔다.

오로라 소식에 맘이 급해졌다. 잠들기 전 침대 옆에 챙겨둔 카메라 장비를 들쳐맸다. 더 자고 싶다며 이불을 둘둘 말던 아내도 깨우고는 차에 태워 교회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았다. 마을에서 교회 위 오로라를 찍는 편이 더 멋있었을 텐데. 왜 나는 무작정 교회로 향한 건지.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오로라 찍으러 교회에 도착.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언덕이 사방에 개방되어있다는 점이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아줄 벽 하나 없었다. 손을 덜덜 떨며 교회 출입구 앞에 삼각대를 설치했다. 정말이지, ‘장갑마저 없었더라면…’이라는 가정만 계속 되뇌었다. 한국에선 세차게 부는 바람을 칼바람이라 했던가. 여기는 얼음덩어리에 팔을 데었다가 떼는 느낌이다. 그냥 춥다. 아니, 차갑다. 따뜻한 오뎅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여긴 왜 그런 게 없지?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예보와 달리 허연 오로라는 보이지 않았다. 나풀거리는 하늘 커튼이 없음을 확인하고선 아내 목에 걸린 자그마한 카메라를 들어 하늘을 찍었다. 삼각대 없인 흔들린 사진이 찍힐 뿐이지만, 오로라 추적 장비에 이만한 게 없다. ‘고스트 버스터즈’에 나온 유령탐지기처럼 말이다.

찰카닥, 옳거니!

유령을 잡았다.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유령은 가까이 있지 않았다. 하늘을 뒤덮은 줄 알았던 오로라는 벌써 저만치 가있었다. 떠나가는 모습이니, 옷자락이라도 밟은 셈일까. 조금 더 빨리 나왔으면 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아이슬란드는 이미 어제 우리 부부에게 큰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맘 속으로 흔드는 손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안녕, 오로라야.

오로라를 떠나보내고 우린 교회 입구에 걸터앉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모래알 같은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밤 바닷바람도 차지 않았다. 파도 없는 바다와 마을을 밝힌 작은 빛들이 만들어낸 잔잔한 야경은 도시가 만들어낸 현란함보다 사랑스러웠다. 아내와 나는 교회에 가만히 앉아 ‘향’에 또다시 취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슬란드가 주는 오늘의 선물은 오로라가 아니라 비큰가 보다.

vík í mýrdal - svg xml  3Csvg 20xmlns 3D 27http 3A 2F 2Fwww - Vík í Mýrdal 언덕에서 바라본 오로라

밤하늘을 바라보며 비크에서.